커버스토리 / 최승호

 

 

 

빈 과일바구니를 뜯어먹는 벌레 꿈

 

 

이수명

 

 

 

아직도 나는 거미가 왜, 끈적한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지

이해 못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법이 佛法이고 不法이다.

커브를 튼다. 택시들이, 자전거들이 거미줄을 타고

굴러간다,

― <거미줄> 부분

 

 

1987년에 나온 시집 《진흙소를 타고》에서 최승호는 거미줄에 걸리지 않는 거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쳐 놓은 거미줄에 기거하면서도 그 끈끈한 줄에 걸리지 않는 거미를 신기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거미의 모습은 바로 시인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거미줄이라는 존재의 형식을 평생 직조하면서도 그로부터 자유로운 거미는 자신이 이룬 세계에 결코 스스로 결박당하지 않는다. 거미는 자연계의 많은 생물들 가운데 예외적인 존재인 것이다. 2000년 8월에 나온 시집 《모래인간》을 보면 최승호는 자신이 짜온 거미줄에 대해 이제 확연한 인식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거의 이십 년에 달하는 시력에서 그는 그 거미줄이 모래나 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래인간》을 찬찬히 살펴본다. 이 시집에서 그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공(空)이다. 문득 그가 《대설주의보》의 시인이라는 것을 상기해 본다. 그는 이 싱싱한 시집으로 등장했고 사물들은 구체적이고 명료했다. 그가 "저 놈은 숫소다./눈썹이 검고/불알은 크고/머리엔 도깨비의 뿔이 솟아 올랐다./저놈은 숫소다./콧구멍이 내뿜는 콧김은/증기 기관차의 증기처럼 거세고/다리는 다리의 다리처럼 튼튼한데/쯧쯧, 저런/숫소가 쿵 하고 드러눕는다./빼빼 마른 백정 앞에서/덩치 큰 숫소가 드러눕는다."(<숫소> 부분) 하고 숫소에 대해 말할 때 그 거침없고 사실적인 어조엔 힘이 넘쳤다. 그리고 이 힘은,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올 듯 덤벼드는 눈,/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대설주의보> 부분) 하고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장엄한 아름다움까지 갖춘 위용을 하고 있었다.

 

최승호의 시세계는 크게 두 가지의 축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시적 대상으로 삼아 온 세계이다. 초기 시에서부터 그에게 세계는 비판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나타난다.그는 세계를 변기, 자동 판매기, 통조림, 냉장고, 정육점이나 푸줏간 등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세계 내에서 서식하고 있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축이다. 그것은 주로 북어, 오징어, 낙지, 뿔쥐나 시궁쥐, 대머리독수리, 쥐며느리 등으로 대표되는 곤충이나 동물들이다.

이 두 축을 운용하여 그는 갇힘의 세계와 그 안에서 다양하게 생존을 영위해 가는 존재들의 양태를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자동 판매기 속에서 바퀴벌레 일가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바퀴벌레 一家>). 이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는 세계와 존재라는 두 축은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를 거쳐《세속도시의 즐거움》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회저의 밤》에 이르면서 그는 어조의 변화와 함께 다른 모색을 하게 되고,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은 그 전의 시집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를 보여 준다. 확실히 이 시집들에 오면 이전 세계의 두 축, 특히 존재의 축이 부서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북어나 거미나 낙지와 같은 존재가 눈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감옥과 죽음으로 이어지던 변기, 통조림, 정육점, 수족관의 세계는 재나 모래로 부서진다. 그는 존재와 세계를 모두 부쉈다. 재와 모래의 세계 안에서 언제나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부수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든 부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기억하려 하고 쌓아 두려고 한다. 일용할 양식이 거기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이 부숨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다.

 

본질에 이르고자 할 때 우리는 생략하게 되고, 외양을 넘어서고자 하고, 집중하고자 한다. 이 집중의 힘, 숫소의 콧김이나, 몰아치는 눈보라 군단에 집중하던 힘은, "자신은 똥칠이 되어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6尺의 똥 막대기"(<희귀한 聖子> 부분)에 집중하던 힘은 사물을 잘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물과의 거리마저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 본질에 이르고자 할 때 집중은 사물과의 거리를 소멸시키고, 나아가 사물의 경계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것, 이 집중의 힘은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하며 안쪽에서 뚫어야 한다(<누에> 부분)는 자각을 거쳐, 존재와 세계의 내면으로 이동하면서 그 파괴력을 발휘한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북어> 부분)는 북어란 존재는 무엇인가?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이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 시체 냉동실(<세속도시의 즐거움2> 부분)이란 무엇인가? 이 시끄럽고 번잡한 목록들이 본질의 세계에서 눈이나 재, 모래의 세계였던 것이다.

 

존재와 세계의 본질이 눈, 재, 모래라면, 녹거나 흘러내리는, 흩어지는 것이라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음인가?

 

《회저의 밤》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무(無)나 허공이라는 말은 이후의 시집들에서 그의 주요한 주제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그로테스크》를 거쳐 《모래인간》에 오면 이것이 그의 시집을 관통한다.《모래인간》은 공(空)에 대한 그의 생각의 정밀한 지도이다. 空은 이 시집에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空의 자리에서 세계를 보는 것과 空을 객관화시키고 맞서고 탐문하는 것이다.

 

空의 자리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사물들은, 생명들은 스스로가 空 그 자체이거나, 혹은 재나 모래와 같은 본질로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空에 이르거나, 아니면 空의 세계에 존재론적으로 합류한다.

우선, 최승호의 시에서 사물들은 그 자체가 空으로 나타난다. 필름이 없는 사진기, 만 년 뒤에 발굴하면 출토품이 아무것도 없을 지하 주차장, 식탁에 잔뜩 널려 있는 조개 껍질들, 텅 빈 건물들은 이미 그 존재 자체가 空의 세계를 현현한다. 이 사물들은 空의 은유다. 이들은 대부분 죽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부서진 머리를 뒤적거리던 숟가락이 건져올리는

 

희멀건 눈알

 

흰자위도 눈동자도 수정체도 없을 때, 속눈썹도 눈물도 없을 때, 망막도 없다. 허상도 없다. 근시도 없고 난시도 없고 노안도 없다. 눈조리개도 없다. 시신경도 없다. 껌뻑거릴 눈꺼풀이 없다. 낮도 없고 밤도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텅 빈 눈에 어울리는 것은 도수 없는 안경, 허공이 안경이다. 테 없는 안경, 안경알 없는 허공이 안경이다.

― <보이지 않는 것> 부분

 

위의 시는 존재 그 자체가 취하는 空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 숟가락에 건져 올려진 희멀건 눈알은 분명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물질로서의 역할이나 기능을 상실하고 다른 것이 되어 버렸다. 눈알은 이미 텅 빈 눈이며 아무 것도 없는 無의 세계, 그러나 그 없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空의 세계로 나타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텅 빈 눈이기에 세계는 낮도 없고 밤도 없는 텅 빈 것인가? 아니면, 텅 빈 눈이기에 허공이라는, 우주를 갖게 되는 것인가?

 

空의 자리에서 세계를 보는 두 번째 방법은 사물의 본질이 되는 먼지, 모래, 재로 空에 이르는 길이다.

 

모래에서 끝나는 육체, 모래에서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모래로 흘러 다니는 육체, 더 쪼갤 수 없이 잘게 쪼개져서 사막을 흘러 다니고 바람에 불려 다니는, 더 이상 육체라고 부를 수 없는 육체, 방황하는 모래들, 표류하는 모래들, 폭풍에 들려 빈 하늘에서 빈 하늘로 떼지어 날아가는 모래들,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누구의 뼈도, 그 누구의 살도 아닌,

― <모래인간> 부분

 

더 이상 육체가 되지 못하는 모래들의 표류는 오히려 표류의 시간 속에서 육체가 된다는 것, 그 누구의 뼈와 살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육체가 된다는 것과, 육체가 되지 않고 떠도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빈 하늘에서 빈 하늘로 떼지어 날아가는 모래들은 지금 모래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최승호의 空의 세계가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으로 존재하는 것은 이상과 같이 사물이 죽음이나, 본질로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로 空과 하나가 될 때이다.

 

불길 속의 북어는 허공을 물어뜯을 듯 아가리가 벌어져 있다. 몸통은 없다. 말라붙은 눈이 있던 자리엔 구멍이 났다. 그 구멍엔 이제 허공 눈알이 들어앉았다. 참 맑은 눈알들, 시력은 제로. 시선은 無限. 북어대가리는 점점 구워진다. 그러나 허공눈알 두 짝은 절대로 구워지지 않을 것이다.

― <불> 부분

 

불길 속에서도 북어의 두 눈이 구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북어의 눈이 일시적인 물질의 성격을 떠나 空을 받아들여 空과 합일을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空과 하나가 된 눈은 이제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없는 텅 빈 눈이 아니라 절대로 구워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절대로 파괴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눈이다. 그리고 파괴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상태를 넘어 무한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空에 합류한 것이기에, 空이기에, 허공눈알은 무한한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空의 자리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 사물들이 스스로가 空 그 자체이거나, 혹은 재나 모래와 같은 본질로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空에 이르거나, 아니면 空의 세계에 존재론적으로 합류한다는 것, 이 세 가지 길은 결국은 같은 길일 것이다..

空의 자리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 이때 空은 곧 사물의 자리이다. 사물들은 삶이나 죽음으로 空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초월적인 인식에 귀의하는 것은 아닐까? 空이라는, 밑그림 없는 설계도에 의지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왔을 때 최승호가 접어든 길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空의 자리에 서거나 空을 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는 空의 맞은 편에 서서 空을 객관화시키고, 맞서고, 탐문하고 있다. 이것은 空을 인식과 감각의 대상으로 놓는 것이다. 물론 空의 정체를 추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 줄 따름이지만, 따라서 그 싸움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존재와 空이 갖는 거리를 보여 줌으로써 空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그 세계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모래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는 새로운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공은 찢어진 채 너덜너덜 굴러다닌다. 그 방향들, 얼크러진 선, 공의 방향이 바람 방향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때로 공은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 공터 한 구석에 처박힐 때도 있다. 그걸 다시 물고 나오는 건 개다. 공은 물어뜯기고 개침에 젖지만 완전히 찢어지지 않는다. 공은 의외로 질기다. 다른 공, 제로(zero)는 더 질기다고 할 수 있다. 그 공은 물어뜯을 수 없고 입에 물 수조차 없다. 공터에 밤이 온다. 공에도 밤이 있다. 너덜너덜 찢긴 공안에 어둠이 들어앉는다. 그 어둠은 공 밖의 어둠보다 조금 더 어둡다.

― <공터의 공 하나> 부분

 

물어뜯기고 찢어진, 개침에 젖은 공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다른 공, 제로를 물질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너덜너덜 굴러다니는 공이 의외로 질기지만 다른 공, 제로는 더 질기다고 할 때 형체를 갖지 않는 다른 공, 제로가 굴러다니는 공과 비교되면서 비교 대상의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른 공, 제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최승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空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제로는 근원이고 출발이며 비어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空이다. 그리고 굴러다니는 공과 제로와 空이 연관을 가지면서 얽히는 다른 공, 제로 는 《모래인간》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다른 공, 제로는 더 질기다고 할 수 있다. 그 공은 물어뜯을 수 없고 입에 물 수조차 없다고 할 때, 空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가능성이 부정되고는 있지만 물어뜯기거나 입에 물리는 대상으로 대상화된다. 더 질기다는 것, 입에 물 수 없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空을 강력하게 절대화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空이 굴러다니는 공에 비교될 만큼, 개에 물어 뜯기는지 여부로 판단될 만큼 상대적인 어떤 것이 된 것이다.

 

개는 空을 물어뜯거나 입에 물 수가 있는 것이다.

 

부정과 긍정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부정을 통해 긍정이, 긍정을 통해 부정이 존재하는 것이며 어느 쪽도 배타적으로 한 쪽을 배제하지 못한다. 물어뜯을 수 없다고 할 때 이미 물어뜯은 것이다.

 

이제 개는 空에 맞서고 있다. 이것은 존재가 空의 자리에 서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존재가 어떠한 가치나 철학이나 진리를, 세계를 자신의 준거로 삼아 그 자리에 서거나 자신보다 우위에 두었을 때 이러한 존재를 다루는 시는 시보다 뛰어난 어떤 것이 된다. 空을 다루는 것도 그렇다. 空이라는 것이 분해되지 않는 어떤 전제가 되는 것은 시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소한 空을 앞에 놓고 그것을 존재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개가 空에 맞선다고 했을 때 이때의 空은 사물의 뒤에 숨어서 사물의 본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와 마찬가지의 존재나 사물로 나타나는 것이며 존재화된, 사물화된 空은 시의 대상으로서 시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제 空은 그 의미와 질서를 시의 형상화 과정 속에서 탐문받게 된 것이다. 다음의 예는 《모래인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과일바구니 속의 악몽이란 빈 과일바구니를 한없이 뜯어먹는 벌레 꿈 같은 인생을 말한다.

― <과일바구니 속의 악몽> 전문

 

과일 바구니 속에 과일이 없음을 벌레는 알고 있을까? 알든, 모르든 벌레의 인생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벌레는 과일이 없는 과일 바구니 속에서 추락과 소멸을 겪는 것이 아니라 빈 과일 바구니를 한없이 뜯어먹는다. 물론 이것은 깨어나야 하는 악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과일 바구니를 벌레가 뜯어먹을 때 그 순간 벌레는 과일 바구니를 인식할 수 있다. 하찮고 유한한 벌레 같은 존재들이 空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空 속에 담기는 것이 아니라 空을 마주하고 감각하는 것임을 이 시는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과정이 영원한 것이며 악몽은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눈이 녹으면 그 흰 빛은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물은 사람은 셰익스피어였다.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명상이다. 동시에 불멸에 대한 불후의 화두다. 눈은 녹지만 눈의 흰 빛은 녹지 않는 것일까?

눈이 녹는 것과 눈의 흰 빛이 남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존재의 본질에 따라 눈이 녹는 것이라면, 흰 빛이 이동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다. 인간의 시선이고, 기억이고, 질문이고, 상상이다. 그 흰 빛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질문하고, 상상한다. 그러면서 눈이 녹아 버린 후에도 녹지 않는 흰 빛을 언제까지나 보게 된다. 그 흰 빛은 우리 속에 있다.

 

불멸은 인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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